낙화
LUCY
T's Diary
BG City/Log

  살면서 내가 엄마로 불릴 거란 상상을 해본 적은 없었다. 그것도 지부원에게. 이건... 잘된 일이 맞을까? 내가 이 아이의 가능성마저 가둬버리는 건 아닐까? 온갖 생각에 정신이 가라앉을 즈음, 머릿속을 스치는 장면이 있었다. 언제나 나를 쫓던 눈. 그 유리구슬 같은 눈 속에는, 항상 내가 비쳐있었다.

  참 새삼스러운 생각이다. 이래서야 믿는다고 말했지만 전혀 믿지 못한 사람이 되는 거니까. 마냥 나만 보던 아이의 얼굴이 떠오르면, 자연스레 다른 아이들도 떠올리게 된다. 세상을 미워해 모든 걸 파괴하려던 아이도, 자신만의 안전한 공간에 스스로를 가둬두던 아이도. 백지가 되었으나 다시 저만의 색으로 세상을 읽어가는 아이와, 기묘한 이웃과 함께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알게 된 아이까지. 이 모든 아이들의 미래가 내 손에 달려있다니, 기쁘면서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다고 했던가. 나는 그들을 안전하게 감싸준 하늘이었을까. 필요한 때에 그늘과 볕을 내어주고, 시원한 바람을 불게 하는. 그런 도움이 되는 스승이었을까. 언젠가 인연이 끊어진다 하더라도... 그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고, 좋은 선생이었다고. 그런 생각을 해줄까? 사실 마음만 먹으면 간단히 알아낼 수 있겠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일말의 양심일 수도 있고, 원치 않는 상황에 대한 회피일 수도 있다. 내가 그들을 소중히 여기는데, 그들이 날 소중히 여기지 않는 건 그 누구라도 꺼릴만한 일이니 말이다. 상처 받을 만한 상황을 회피하는 건 인간의 기본적인 방어기제다. 이걸 내가 직접 겪음으로써 알고 싶진 않았는데.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단 위에 서 있고, 비일상에서의 아이들을 가르쳐 각자의 자리로 보내는 일을 하고 있다. 이 일에 한 점 후회는 없다. 언젠가 내가 이 자리를 내려놓아야 할 때가 오면, 이 일기를 보여줄 수 있을까? 음... 아마 내가 죽는 게 아닌 이상 그럴 일은 없겠지.

  아이들에게 바라는 건 이것뿐이다. 늘 건강할 것, 험난한 일이 더 많겠지만 그것들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말 것. 세상의 모두가 등 돌린다 해도 돌아와 기댈 수 있는 장소가 있음을 기억할 것. 그리고... 그 장소가 여기임을 잊지 말 것.

  아직 천방지축일 나이대라 이 말의 뜻을 모르는 게 당연할 테다. 하지만 언젠가 너무나 힘들어 무너질 것 같을 때, 아... 선생님이 계셨지. 하고 떠올리기만 해도 내 인생은 목적을 다한 거니까. 부디 나와 이 지부의 존재가 아이들에게 쉴 곳이 되고, 기댈 곳이 된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역시 내가 더 잘 가르쳐야겠지.

  아이라고 할 수 없는 녀석도 있기야 하지만, 다 큰 어른에게 그런 걸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자유에 맡길 뿐이다. 목줄의 주인을 따라가든, 새로운 장소로 영영 떠나든, 혹은 목줄을 내려놓고 이 곳에 둥지를 틀든. 모두 그가 스스로 선택해야 할 일이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정말... 엄마라도 된 기분이 든다. 나는 너희에게 든든한 지부장이자, 믿을 수 있는 보호자일까. 내가 너희를 가르치고, 돌보는 게 내 욕심에서 비롯된 일은 아닌 걸까. 누군가는 노이만에게 고민은 사치가 아니냐 묻겠지만... 세상의 진리를 몇 초만에 깨달을 수 있다 하여 사람의 속까지 꿰뚫고 있을 순 없다. 감정은 전자 회로나 자연의 섭리 같은 것이 아니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엄한 지부장이면서 다정한 엄마가 되고, 든든한 지원군이자 믿음직한 교사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이 자리는 내 노력으로 얻은 것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천명 같은 자리니까. 내 천명은 아마 너희겠지.

-XX.XX.XX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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