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단 한 번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감각 같은 건 느껴본 적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노이만이라고 하면 자연히 따라붙는 수식언들이 있지 않은가. 불세출의 천재, 컴퓨터보다 명확한 두뇌. 이런 것들 말이다. 물론 이런 말들은 모두 편견이라 치부하고 싶으나... 차마 부정할 수는 없는 말이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나는 왜 당신이 UGN에 남길 바라는 걸까. 무슨 이유로 배신 같은 건 하지 않길 바라고, 우리 사이에 하등 쓸데없을 오지랖을 부리고 있는 건지. 이 관계를 통해 무엇을, 어떻게 얻고 싶은 건지. 전혀 모르겠다. 더 문제인 점이 있다면, 왜 당신과 함께 임무를 다닐수록 예전의 나로 돌아가게 되는 건지 나조차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지켜야 할 이도, 발을 걸친 비일상도 없이 평범했던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와 몇 번이나 마주친다. 정말 그걸로 괜찮냐는 듯이 묻는 나를 보면 기분이 미묘해진다.
감시를 위해 시작된 관계. 바라는 것 따위 없는 게 당연하다. 그래야만 했다. 우리는 언제든 서로를 배신하고,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가 대척점에 설 수 있는. 아니, 그렇게 해야만 하는 사이니까. 내가 배신할 수 있듯, 당신 또한 나를 배신할 수 있으며. 최악의 경우 내가, 혹은 당신이 죽을 수도 있는 이 관계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신뢰가 필요했다.
그러니 쌓아 올린 것뿐이다. 인간인 '이시카와 시오리'로서, 감시자인 '테미스'로서. 의도한 신뢰와 의도치 않은 호의를. 이는 어느 정도의 계산을 기반으로 한 행위였으나... 오히려 계산할 수 없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당신 또한 나에게 호의를 건네었으니까. 의도와 의도가 맞물리며 톱니바퀴처럼 돌아가, 예상치 못한 일들만 불러왔다. 부품 취급을 제일 싫어했는데 결국 톱니의 일부가 되다니 참 이상한 일이지.
신뢰를 통해 점점 가까워질수록, 기분이 묘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싶어서. 그래도 덕분에 즐거운 일이 참 많았다. 그렇지 않은 일도 많았지만. 가령 같이 오토바이를 탔던 날이라거나, 식사를 했던 날은 평범하게 즐거웠다. 겨울 바다에 빠졌던 날도 몸은 힘들었지만 돌이켜 보면 나쁘지 않았다. 즐겁지 않았던 날은... 따지고 보면 딱히 없다. 모든 과거는, 뒤돌아 보았을 때 어느 정도의 미화를 덮어씌운 모습이 되니까. 힘들었던 것도, 고통스러웠던 것도. 돌이켜보면 일종의 추억으로 남았다.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일수록, 그런 추억 또한 늘어만 갔다. 이게 옳은 일인가? 서로를 감시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보면 결코 옳지 않다. 그런 것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이 싫지 않다. 사춘기 소녀도 아니고, 이게 무슨 일이람. 분명 단단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물론 유하다는 게 잘못된 건 아니다. 지금의 상황에 적합하다고 말하기 어려울 뿐이니까.
내가 당신을 감시하고, 당신이 나를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이래 봤자 내 손해라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마 당신 또한 그리 생각하겠지.
그런데도 끝내지 못한다는 건 아마... 내 고질병이 또 도진 것일 테다. 대체 정이 뭐라고. 그러나 내가 정 때문에 당신을 끌어당긴다 하여, 모든 게 순순히 풀리지는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퍼스널 스페이스, 쉽게 말하면 중력—정확히는 인력과 척력이지만—이 존재한다. 그 중력이 끌어당기는 이를 거부한다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된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난 무얼 할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그저 평소처럼, 언제나와 같이. 그렇게 지내는 게 전부다. 섣불리 움직였다간 그간 쌓아왔던 것들까지 모두 잃을 수 있으니 말이다. 나와 당신 사이 존재하는 로슈로브는, 그 누구도 쉬이 건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높은 자리에 서면 겁이 많아진다고 누가 그랬던가.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지위가 없었다 해도 나는 겁 많은 사람이었을 게 뻔하다. 지켜야 할 아이들이 있고, 가르치는 제자들이 있으니까. 스승이란, 그리고 보호자란 늘 그런 법이다. 방어적으로 행동하고 보수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뭐... 그런 사람들 중엔 꽤나 진취적인 축에 드는 편이라면 할 말은 없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럴 수밖에 없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스스럼없이 불구덩이에 뛰어들기도 하고, 가장 깊은 곳의 땅굴에 숨기도 하는 모순적인 사람이.
그런 내가 현재에 안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단순히 지금이 즐겁다는 이유로. 가끔 짓는 평범한 웃음이 좋았다는 이유로. ...아니, 고작 그런 게 전부일까? 나조차 알 수 없다. 내가 무엇을 느껴서, 어떤 연유로 이런 생각을 하는지.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나도 모르는 나를 남이 알 수 있을 리 없잖아.
아이들을 만나봐도 괜찮겠다던 그 말이, 짐을 지운다던 그 이야기가. 어쩌면 기폭제가 된 걸지도 모르겠다. 조금은, 아주 조금은 이 상태를 유지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이건 괜한 망상일지도, 모든 일을 그르치게 될 판단일지도 모른다.
잡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또 다른 생각을 낳기 시작했다. 왜 끊어내지 못하지? 어떻게 하고 싶은 걸까? 대체 무얼 위해 이러고 있는 거지?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생각이 마침내 멈추면, 나조차도 믿기 어려운 결론이 나왔다.
그러니까, 나는, 당신이...
"...가지 말아요."
떠나지 않길 바란다. 그 어떤 이유도 알지 못한 채로. 그저 막연하게.
제 행동의 까닭도 모르는 주제에, 당신이 이곳에 남길 바랐다. 청을 들어주는 건 당신의 몫임에도 무책임하게 선택권을 떠넘긴다. 이는 권리를 양도하는 행위가 아니라, 비겁하게 도망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인정하기 싫지만, 동료라기엔 주제넘은 일이었다. 그러니 그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 심지어는 당신에게도.
그럼 동료라 부를 수 없는 이 관계를 무어라 명해야 할까.
아, 그래.
'파트너'라고 할까?
언제 어디서 끝나도 이상하지 않은 이 관계에 동료라는 이름은 적합하지 않다. 각자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잠시간 협력하는, 일시적 파트너가 훨씬 어울릴 테다.
그렇다면, 언젠가 우리의 끝이 도래했을 때. 나는 이 관계의 마지막에 웃어 보일 수 있을까? 함께할 날은 이제 없겠지만 그간 참 즐거웠다고.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그때 당신을 붙잡으면, 당신은 잡혀줄까? 그동안 지켜봐 왔던 당신은 예상외로 무른 사람이라, 잡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무르기 때문에 오히려 잡히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손에 쉬이 잡히는 것은, 모두 단단한 형태이니까. 무른 것은 손 안에서 바스러지거나 흩어지고 만다.
무른 표범과 더 무른 토끼. 그러니 한쪽이 없어졌을 때 더 타격이 큰 사람은 더 무른 쪽인 내가 될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온갖 절망적인 상황만을 구성해 둔 시뮬레이션에서 단 하나의 가능성을 남긴 건.
당신이 내 말을 듣고, 이곳에 남아준다는. 가장 실현 가능성이 낮은 한 갈래 길. 굳이 명명하자면 희망고문이나 다름없다. 그야 당신은 할 수 있는 한 가장 상냥하게 거절할 테니까. 그래서, 잡생각은 그만두기로 했다. 더 생각해 봐야 머리만 복잡해지고.
상념에서 빠져나온 뒤, 문득 창 밖을 보았다. 별이 떨어진다. 겨울 바다를 연상시키는 검푸른 하늘에, 샛노란 꼬리가 늘어진다. 저 별이 짙은 바다에 잠겨가는 우리처럼 느껴졌다면 그건 기분 탓일까.
혜성의 머리는 일부분이 붉은빛을 띤다. 가속도니 뭐니 하는 이론들을 차치하고, 일단 그렇다. 그러니 우리는 혜성—流れ星—을 닮았는지도 모른다. 저 별은 누구의 바람을 들어줄까. 나일까, 당신일까. 어쩌면 우리 둘 다 아닐지도 모르지.
붉게 시작해 금빛으로 끝난 별은, 퍽 따스했다. 그것이 내 주관적인 감상이라 할지라도. 그 따뜻한 별에 감히 소원을 빌자면, 우리의 마지막 또한 그런 온도이길 바란다. 당연히 이루어질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때로, 기적은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곤 하니까.
창 너머로 별빛이 쏟아진다. 아주 산산이. 정말 우습게도, 오늘의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내 생각의 결론과 이후에 일어날 일들을. 예상보다 조금 빠르게 다가올 타이밍을.
분명히 정의할 수 있는 때가 언젠가 올 것이다. 당신이 떠나지 않길 바란 이유, 이 관계의 유지를 바란 이유. 그리고 훗날 맞이할 그 상황에, 당신을 붙잡게 될 이유를.
나는... 내 생각보다도 더 의지하고 있던 것 같아요. 당신을.
아주 담담하고, 당연스럽게.
왜냐면, 내게 끝을 고하는 당신은 연인에게 이별을 고하던 과거의 나와 닮았을 테니까. 그 사람이 하지 못했던 것을, 이미 경험해 본 나는 할 수 있겠지. 가깝고 소중한 사람을 위해 떠나는 그 순간에 어떤 마음일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