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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Y
Over The Christmas
Christmas roses
✒️Log

  크리스마스 시즌이 된 마을은 형형색색의 장식들이 가득하다. 마을 중앙에는 거대한 트리가 있고, 상점가는 전구와 가랜드로 한껏 멋을 냈다. 물론 집안도 예외는 아니다. 창가에 자리한 스노우볼, 거실의 크리스마스 트리, 난로가에 걸린 양말. 그 누가 보아도 크리스마스를 맞아 꾸몄음을 알 수 있을 정도이다.

  바네사는 모든 기념일을 통틀어 크리스마스를 가장 좋아한다. 연말이 주는 포근함과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훈훈하게 선물을 주고 받고, 서로의 안부를 전하는 것들이 좋았다. 아마 그녀의 타고난 성정이 주변인과 나누는 것을 기꺼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에겐 유독 겨울에 쌓인 추억이 많았다. 어릴 적 친구들과 했던 눈싸움, 지금은 볼 수 없는 친구가 지었던 얼음 성, 목도리와 장갑만 있으면 두려울 게 없던 눈밭. 몇 알 주워먹는 것만으로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이 들던 겨울 딸기. 모두 그리운 추억의 산물들이다. 수많은 일들을 겪은 후 돌아보니, 모든 순간이 돌아가고 싶은 과거가 되어 있었다.

  과거를 회상한다 해서 돌아갈 수 없음을 그녀도 잘 안다. 그렇기에 다른 선택을 하고, 가장 친한 친구와 함께하게 되었다. 지금도 옆에서 그녀를 향한 걱정을 조곤히 늘어놓는 친구는 한 손에 핫초코 잔을 들고 있다. 그녀의 시선이 닿고서야 걱정이 멈춘다. 언제나처럼 그는 그녀의 웃는 모습을 좋아했으니까.

  "...해서, 일단 받아. 핫초코야."
  "와아! 고마워, 피오!"
  "그래도 밖에 나갈 땐 목도리랑 장갑 꼭 챙기고. 주머니에 손 넣고 걸으면 안되고..."
  "그러니까... 난 어린 애가 아닌데도?"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걸. 바네사는 어릴 때도 눈만 오면 뛰어나갔으니까."
  "그... 건 그렇지만..."

  그녀가 머쓱한듯 다시 웃었다. 그러고는 화제를 전환하려는지 제 손에 쥐어진 핫초코를 조금 마셨다. 달콤함과 따스함이 온 몸을 타고 내려가는 기분에, 작은 탄성이 새어나왔다. 어릴 적처럼 말간 표정을 지으면 피오 또한 잔에 든 핫초코를 마시고 어릴 때와 같은 얼굴을 한다.

  "맛있다아..."
  "입에 맞아서 다행이야, 바네사."
  "그야 피오가 해주는 건 뭐든 맛있는걸?"
  "응, 그래서 다행이라는 거야."
  "그런 거구나... 아참, 이번 크리스마스엔 뭐 할까?"
  "특별히 하고 싶은 건 있어?"

  바네사의 인상이 잔뜩 찌푸려진다. 딱히 기분이 나쁘다기보다는, 집중했을 때의 버릇이다. 그걸 알고 있기에 피오는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귀여운 버릇 중의 하나로 볼 뿐이다. 그가 작게 키득이고 다시 물었다.

  "천천히 생각해봐도 되니까. 오늘 나가보면 생각날 수도 있잖아."
  "아! 그렇구나! ...응, 나가보자!"

  만반의 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서면, 차가운 겨울 공기가 뺨을 스쳐 지나간다. 마냥 나쁘지만은 않은 감각이다. 캐롤이 울려퍼지는 거리를 걷자니, 새삼 연말임이 실감났다. 바네사는 주변 풍경에 정신이 팔린 듯 이리저리 둘러보기 바쁘다. 그런 그녀가 어딘가에 부딪히거나 넘어지지 않게 살피는 건 늘 피오의 몫이었다.

  "바네사, 거기 전봇대가..."
  "아, 응! 알려줘서 고마워!"

  우여곡절 끝에 잼과 채소, 과일 따위를 사고 나면 케이크를 고를 차례가 온다. 물론 바네사가 딸기 케이크를 가장 좋아하기 때문에 별다른 선택지는 없다. 딸기 케이크와 마들렌 몇 개를 사고 빵집에서 나서자, 무언가 생각난 듯 바네사가 뒤를 돌아본다.

  "피오, 나 생각했어!"
  "어떤 생각인데? 바네사."
  "이번 크리스마스엔... 눈사람 만들래? 친구들 얼굴 모양으로."

  그녀가 쓰게 웃는다. 그러나 쓴 웃음은 금세 지워지고, 원래의 천진한 미소가 자리잡는다. 쓴 웃음과 뜬금 없는 제안의 이유를 아는 피오가 마주 웃었다. 그도 그녀도 친구들을 그리워해서, 가끔은 과거를 회상하며 웃고 울었다. 특히 바네사가 그 친구들을 끔찍이 아꼈기 때문에, 그는 내포된 의미를 단박에 알아챘다.

  "응, 그렇게 하자. 분명 재미있을 거야."
  "에헤헤, 그렇지? 들어줘서 고마워."
  "아냐, 바네사와 하는 일은 늘 재미있으니까 고마워하지 않아도 돼."
  "그런가..."
  "...크리스마스, 기대된다. 그치?"
  "아, 응! 나도 기대돼. 헤헤..."

  미묘한 정적이 감돌았다. 크리스마스는 참 기쁜 날이다. 이렇게 눈사람을 핑계로 친구들을 그리워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적어도 바네사의 생각은 그랬다. 제게 남은 유일한 친구는 어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번 크리스마스 또한 작년만큼 즐거울 거란 막연한 예감만 들었다.

  장미는 겨울에 피는 꽃이 아니라지만, 지금 이곳엔 겨울의 추위를 뚫고 피어난 장미 두 송이가 있다. 두 장미들은 서로 얽혔기에 추운 겨울을 견딜 수 있었다. 둘은 아마 이번 겨울과 크리스마스도 뿌리와 줄기를 굳게 얽은 채 이겨낼 것이다. 둘은 가장 친한 친구이자 서로의 유일한 이해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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