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내가 엄마로 불릴 거란 상상을 해본 적은 없었다. 그것도 지부원에게. 이건... 잘된 일이 맞을까? 내가 이 아이의 가능성마저 가둬버리는 건 아닐까? 온갖 생각에 정신이 가라앉을 즈음, 머릿속을 스치는 장면이 있었다. 언제나 나를 쫓던 눈. 그 유리구슬 같은 눈 속에는, 항상 내가 비쳐있었다. 참 새삼스러운 생각이다. 이래서야 믿는다고 말했지만 전혀 믿지 못한 사람이 되는 거니까. 마냥 나만 보던 아이의 얼굴이 떠오르면, 자연스레 다른 아이들도 떠올리게 된다. 세상을 미워해 모든 걸 파괴하려던 아이도, 자신만의 안전한 공간에 스스로를 가둬두던 아이도. 백지가 되었으나 다시 저만의 색으로 세상을 읽어가는 아이와, 기묘한 이웃과 함께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알게 된 아이까지. 이 모든 아이들의 미래..
크리스마스 시즌이 된 마을은 형형색색의 장식들이 가득하다. 마을 중앙에는 거대한 트리가 있고, 상점가는 전구와 가랜드로 한껏 멋을 냈다. 물론 집안도 예외는 아니다. 창가에 자리한 스노우볼, 거실의 크리스마스 트리, 난로가에 걸린 양말. 그 누가 보아도 크리스마스를 맞아 꾸몄음을 알 수 있을 정도이다. 바네사는 모든 기념일을 통틀어 크리스마스를 가장 좋아한다. 연말이 주는 포근함과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훈훈하게 선물을 주고 받고, 서로의 안부를 전하는 것들이 좋았다. 아마 그녀의 타고난 성정이 주변인과 나누는 것을 기꺼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에겐 유독 겨울에 쌓인 추억이 많았다. 어릴 적 친구들과 했던 눈싸움, 지금은 볼 수 없는 친구가 지었던 얼음 성, 목도리와 장갑만 있으면 두려..
세상은 불합리하다. 가장 사랑하는 이를 한순간에 앗아가기도 하고, 스스로 포기하게 만들기도 하며, 소중한 순간 또한 너무나 빨리 지나가 버리게 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살아남고자 하면 이것쯤은 이겨내라는 것인지. 한없이 소중하게 만들어놓고, 자꾸만 위기를 만들어낸다. 물론 그것들을 모두 이겨냈기에 지금의 본인이 있다는 걸, 그녀는 아주 잘 알고 있다. 당시엔 괴로웠을지라도 그 경험을 통해 성장한 건 분명하니까. 그런 불합리함을 겪은 이가 자신뿐만이 아님도 알고 있다. 하지만... 모든 걸 아는 천재. 컴퓨터와 같은 두뇌를 가진 노이만이라 해도, 이렇게나 비슷한 사람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첫 인상은 최악. 정반대의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허나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하던가, 막상 알아가보..